꽃미남 KC

등록일 2014.06.04


꽃미남 KC

대한민국 초기정착 몇 개월 후 , 나는 서울에서 하는 "탈북자 북송 반대"시위 모임에 참여 했다.  나의 차림은 체크 난방에 블랙모자를 눌러쓴 차림새였다. 그 때 유난희 눈에 띄는 한 사람이 있었다. 눈이 크고, 코도 뾰족하고 키는 왜 그렇게 큰 지... 딱봐도 미국놈? 이였다. 

 눈이 마주친 후 자연스럽게 "Hi,  hello,  i am KC, from America,  what is your name? "하며 미국인이 자연스럽게 다가 왔다. 나는 "아 앰 ,하이 나이스트 미츄, 어, ㅋ" 하며 말도 제대로 못하고 부끄러워 하였다. 그는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옆에 있던 아는 남한분이 나를 소개 했다. 그는 내가 북에서 온 것을 알고는 전화번호도 교환하면서 연락하자고 하였다.


몇 달 후 , 나는 필리핀을 4개월간 가게되면서 KC에게 나 영 어 조금 배워 올 것 같다고 하였고 , 그는 행운을 빈다고 하였다. 필리핀 가있는동안 그는 종종 문자를 보내왔다. 그리고 탈북학생들중 영어 좀 하는 친구들이 간증이나 강의를 했던 영상들도 카톡메시지로 보내 주었다. 
나는 영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필리핀에 가있다보니 필리핀 "타갈로그어"랑 영어를 섞어서 배우기도 했다.
또다시 새로운 문화속에서 다양한 것들을 배우는 좌충우돌 4개월 이였다.


필리핀을 거쳐 라오스 태국까지 순회하고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 때, 다시 KC가 연락이 왔으며 당시 나는 영어말이 조금 통했고 우리는 만나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KC는 식사를 나눌 때 몹시 흐뭇한 모습으로 자기 소개를 정식하였다. 하버드대를 졸업하고 정치쪽으로 관심을 가졌다가 탈북인들을 만나면서 더 의미있는 현실적인 일들을 하고 싶어 졌다고 하며 , 지금은 원어민 선생님들과 탈북인 학생들을 서로 만나 영어공부를 하도록 매칭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물망초 학교"라는데 소속되어 무료봉사하면서 많은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미국인 영어선생님을 소개시켜 주었다.


또한 "프리덤팩토리"라는 곳에서 일하며 수입적인 것을 채우기도 하였으며, 잼있는 것은  KC가 그 회사 광고를 예쁜언니들과 찍었는데 "꽃미남KC"로 등장 했다. 나는 이후로 계속 "꽃미남KC" 라 부르며 장난쳤다. 나도 그를 통하여 좋은 멘토들을 소개 받고 또, 주위 친구들에게 그가 하는 일들을 공유하여 친구들도 원어민 영어 선생님을 만나게 도와 주었다.


KC의 봉사하는, 베푸는 마음은 정말 꽃보다 예뻤다. 그래서 꽃미남KC라고 부를만도 했다.
지금도 존경하는 든든한 나의 지인중 한분이다. 우리는 함께 인디아에서 개최하는 "아시아 자유포럼"에도 중국 상해를 거쳐 다녀왔다.


한때, 북에서 나쁜놈이라 교육받던 그 미국놈!  만나보니 천사같았다. 선한 마음에 선한일만 찾아 하면서 삶의 뿌듯함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가 마냥 존경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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